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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일(교육업)

조선시대 왕의 하루 일과

by 레오마니 2025. 6. 14.

<백성과 다른, 절대 권력자의 규칙적인 하루>

"임금은 하루의 시작부터가 다르다."
누군가의 하루는 이른 새벽의 땔감 준비로, 누군가의 하루는 화려한 의례와 보고로 시작된다.
조선 시대, 왕과 백성의 하루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특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왕이라는 존재는 절대 권력을 지닌 통치자였지만, 동시에 규율과 책임에 얽매인 하루 24시간의 공식 업무자이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조선 시대 국왕의 하루 일과를 시간대별로 따라가며, 같은 시대 일반 백성의 삶과 비교해 본다. 왕은 어떻게 하루를 보냈고, 그 하루는 왜 중요한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선시대 왕의 하루 일과
조선시대 왕의 하루 일과

▣ 조선 왕의 하루, 시계 없는 시간표

조선은 해시계와 물시계에 의존하던 시대였다. 왕의 하루는 정확한 시계가 아닌, 자연의 시간과 궁궐의 질서에 따라 운영되었다. 하루의 기준은 음력과 천문학을 바탕으로 했고, 시간 단위는 ‘시(時)’로 나뉘었는데, 이는 지금의 두 시간 단위와 같다.

 

 

새벽 5시~7시 (묘시)  : 기상과 경연 준비

왕의 하루는 동틀무렵, 해가 뜨기 전에 시작된다. 이시간 왕은 일어나 세면을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궁 안의 내관들은 이미 몇 시간 전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며 임금의 기상 준비를 돕는다. 왕은 의관
을 갖추고, 경건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 일반 백성의 같은 시간

백성들도 이른 새벽에 일어난다. 다만 그 이유는 농사나 생계 때문이다.
농부는 해 뜨기 전에 밭에 나가고, 장사꾼은 시장에 나갈 채비를 한다. 아낙들은 장작불을 지피고 아침밥을 준비한다.
왕과 백성 모두 이른 하루를 맞이하지만, 왕은 국가의 운영을 위해, 백성은 가족의 생존을 위해 하루를 시작한다.

 

오전7시 ~ 9시(진시) : 경연, 군주의 공부시간

이시간 왕은 경연이라 불리는 학문 공부 시간에 참석한다.

경연은 단순한 독서가 아니다. 성리학자나 신하들과 함께 유교 경전(논어, 맹자, 주자학 등)을 읽고 토론하며, 정치철학과 현실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다.

 

세종대왕은 특히 이 경연에 진지하게 임했다. 매일 참석했고, 때로는 신하보다 더 많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조선의 왕은 전제군주이면서도, 학문적 소양을 갖춘 군주여야 했다. ‘문치주의’라는 조선의 국가 이념 속에서, 공부는 왕의 필수 덕목이었다.

 ▶일반 백성의 같은 시간

이 시간대 백성은 이미 밭에 나가 일을 시작하거나, 장에 가거나, 아이를 돌보고 있다.
글을 아는 백성은 드물었고, 글 공부는 양반 자제나 가능했다.
경연이 왕의 정신 노동이라면, 백성의 이 시간은 육체노동이 중심이다.

 

오전 9시~11시 (사시) : 조회, 정사를 논하다

왕은 경연 후, 정식으로 조회를 열어 국정을 보고받는다.
조회에는 주요 관료들이 참석하며, 국가의 현안, 군사 문제, 세금 징수, 인사 발령, 민심 수렴 등 각종 사안이 논의된다.
왕은 좌정하여 신하들의 보고를 듣고, 때로는 신문(訊問)을 직접 하거나, 토론과 논박을 통해 의견을 조율한다.

조회는 조선 정치를 이끌어가는 중심 행사이자,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공식 정치 무대였다.
이 회의에서 내려진 결정은 전국으로 전파되어 정책이 되었고, 백성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 일반 백성의 같은 시간

농사는 한창 진행 중이다. 한낮의 햇볕이 들기 전, 최대한 일을 많이 해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낙들은 장에 가거나 두레 활동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정치가 오가는 궁궐의 한편, 백성들은 그 결정의 결과를 실생활에서 체감하고 있었다.

 

 

오전 11시 ~12시 (오시) - 아침 겸 점심식사

왕의 식사는 수라상이라 불리는 궁중 음식으로 제공된다. 수라는 왕의 하루 두 끼 식사 중 첫 끼로, 오시쯤에 이뤄진다.
수라는 음식이 아니라 식사의 이름이다. 주로 12첩 반상, 때로는 계절 음식, 지역 특산물 등이 포함된다.
왕은 단순히 맛을 즐기기보단, 약리와 건강까지 고려해 식사를 한다.
식사는 격식을 갖추며, 식후에는 소화를 위한 휴식 시간이 잠시 주어진다.

▶ 일반 백성의 같은 시간

백성은 ‘술밥’ 혹은 ‘고봉밥’이라 불리는 간단한 식사를 한다.
쌀이 귀하던 시절, 보리밥이나 잡곡밥, 된장국, 김치가 전부인 경우가 많았다.
수라는 화려하지만 격식을 따르고, 백성의 밥상은 소박하지만 생명력을 지탱하는 기본이었다.

 

 

오후 1시~3시 (미시) - 사무검토, 보고서 결재

식사 후 왕은 궁내에서 조용히 문서를 검토하고 결재한다.
이 시간에는 승정원에서 올라온 상소, 관리의 탄원서, 외국 사신의 문서 등을 살펴본다.
왕은 단순히 ‘결재 도장’만 찍는 존재가 아니다. 모든 문서를 꼼꼼히 읽고, 내용의 진실 여부와 처리 방향을 정해야 한다.
왕의 손길 하나가 누군가의 생사와 운명을 결정한다는 무게감이 항상 존재했다.

 

오후 3시 ~5시 (신시) - 정무 정리 및 신하 접견

이 시간은 보다 유연하게 활용된다. 왕은 필요에 따라 신하를 별도로 접견하거나, 궁궐 안 행사를 참관한다.
경복궁 안 정원이나 연못에서 학자들과 자연을 논하거나, 왕자 교육을 지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때로는 조용히 독서나 시문을 짓기도 했다. 예술 감각과 문예는 왕의 인품을 드러내는 요소였다.

 

오후 6시 ~8시 (유시) - 저녁식사 및 가족시간

두 번째 수라상이 오르는 시간이다.
왕은 저녁 수라 후 후궁, 중전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왕자나 공주와 함께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사적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후에도 보고서가 도착하면 즉시 검토해야 했고, 중대한 사안이 있을 경우 밤늦게도 회의를 해야 했다.

 

밤9시 ~11시(해시) -하루를 마무리 하다

왕은 해시쯤 되어서야 취침 준비를 한다.
하지만 이는 ‘정무가 끝났다’는 뜻일 뿐, 중대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다시 불려나와야 했다.
조선의 왕은 절대 권력자였지만, 동시에 쉬지 못하는 노동자였다.

▶ 일반 백성의 하루 마무리

백성들은 해가 지면 일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온다.
저녁밥을 지어 아이들과 함께 먹고, 가족과 짧은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촛불도 없이 잠자리에 들며 또 다른 하루를 기다린다.
이들의 하루는 단순하고 반복되지만, 그 안에는 가족을 위한 생존과 공동체의 소박한 행복이 깃들어 있다.

 

▣ 왕과 백성, 다른 하루 – 그러나 모두 삶을 꾸렸다

조선시대 왕의 하루는 분 단위로 통제된 고도의 공식 스케줄이었다.
백성과는 다른 세상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 국가를 짊어진 공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반면 백성은 자유롭지만 가난한 삶 속에서도, 그들만의 리듬으로 하루를 살았다.
누군가는 국가를 다스리고, 누군가는 흙을 일궜지만, 결국 모두가 조선을 지탱한 사람들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일을 하다 저녁에 쉬는 하루를 반복한다.
조선의 왕도, 백성도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지금 우리 삶의 시간표에도, 그들처럼 책임과 가족, 노력과 휴식이 함께 들어 있다.

왕이든 백성이든, 결국 ‘하루를 어떻게 사는가’가 그 사람의 품격을 말해주는 시대였다.